병력이 빼곡히 적힌 서류뭉치를 들고 6병동으로 전해주러 가는 길이었다. 어쩌다 지나치게 된 병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곤 나도 모르게 들어가 침대시트도 깔려있지 않은 냉한 그 자리에 몸을 뉘었다. 침대 위에서 올려다 본 병실은 꽤 넓었고 형광등 빛은 밝다 못해 시린 빛으로 날 쳐다보는 듯하다.

모든 가구와 문틀까지도 내가 침대에 누운 순간 급성장한 듯 거대하고 웅장해보였다. 훤하니 넓은 그 곳에서 덩그러니 놓인 작은 내 몸뚱이가 얼마나 작아 보일까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모든 사물들이 날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의 중심에 정말 날 내려 보는 사람의 눈이 느껴졌다. 정갈한 체크무늬의 등받이를 한 휠체어를 투박한 두 손으로 밀며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다가선 사람. 잠깐 동안 침상에 누워 작은 인간이 된 내 옆에 멈춰 섰다.

“선생님, 편하신가요?”

환자의 물음에 어떤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이끌리다시피 누웠다는 나의 말을 믿을 성싶어 스프링 시험하러 누웠다며 농을 쳤다.

“어떤 사람은 침대 위에서 고군분투해요. 결코 편한 자리가 아니죠. 직접 불편한 몸이 되 보지 않고서는… 잘 모를꺼에요.”

환자의 마지막 말에 주변의 날 쏟아져 내릴 것 같던 거대한 가구와 불빛들이 흐릿해졌고 오로지 환자의 눈만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병력으로 하얀 종이를 물들인 소견서며 검사결과지를 쥔 손에게 물었다. 이 손을 거친 환자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지, 지금껏 내가 옮긴 건 글자뿐이었는지 말이다. 답 없는 손을 뒤로 하고 유유히 병실을 빠져나가는 환자의 뒷모습을 보며 자책의 아픔을 느꼈다.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오는 구절이다.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지금까지 인쇄된 서류상으로만,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 ‘그 사람을 안다’ 라고 하지는 않았던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이윽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직접 느끼고 만져보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하나의 인생을 살고 있지만 지금 자신들이 서있는 ‘입장’이라는 곳의 바로 옆 공간에는 많은 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우리가 그들의 낮은 시선을 상상해 볼 순 있지만 짐작일 뿐, 사실과는 많이 다를 법한 그런 시각이 분명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그들도 우리의 높은 시선을 상상해볼 것이다. 높은 시선과 낮은 시선. 서로를 바라보는 눈이 맞닿는 순간과 이어지는 때를 기억하자.

-12월의 첫 하루를 열며.

히 초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