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 삶의 발견과 불굴의 생명력
- 李木日(이목일)의 작품세계-

鄭木日 (정목일/미술평론가.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3월 14일, 이목일 화가에게서 그림과 편지가 문자로 날아왔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그의 최근작을 보았다.

‘오늘은 새벽 4시 일어났습니다.
어머니가 갑자기 보고 싶어서 빨래판에 그리움을 그렸는데…….
기러기 한 마리가 달밤에 온 몸 달빛을 받으며 내려앉는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이목일은 지리산 기슭 함양예술촌에서 창작활동에 심혈을 기울이던 중 뇌경색이 일어나 현재 부산 해운대에 있는 하워드센텀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그에게 있어서 그림은 곧 존재의 의미이기에 병원에서 화실을 꾸며 창작활동이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정신병원에서 마련해 준 화실에서 ‘별이 빛나는 밤’ 등을 비롯한 많은 작품을 생명혼으로 빚어놓은 것을 떠올리게 한다.

‘기러기의 야간 비행’은 빨래판을 가로로 옆으로 놓고 그린 작품이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오른 쪽에서 머리와 목을 길게 빼고 날개를 펼쳐 날으는 외기러기와 그 아래편으로 보이는 둥근 보름달과 달맞이꽃,
여러 꽃들이 피어있는 모습을 그렸다.

기러기는 무리지어 V자형으로 날아가는 새이다. 외기러기는 길을 잃었음을 암시한다. 보름달과 은하수와 별이 있지만 혼자서 길을 잃고 날아야 함은 뇌경색으로 고통 속에 재활에 몸부림치는 자신의 모습과도 일맥상통한다.
빨래판에다 그림을 그린 것은 모성(母性)의 그리움을 등불로 삼으려는 의도이다.

이목일은 2년 전 대구에서 빨래판 그림전을 연 적이 있다.
빨래판은 빨래감을 치대고 문대기 위해 일정한 간격으로 굴곡이 나있다.
빨래판은 옛 어머니들이 옷가지와 이불을 세탁하는 상비물이다.
모성의 위대함과 재생의 힘이 담겨 있다.
이목일은 병고(病苦)의 절망과 어려움을 떨치고 재활을 통한 새 삶의 비상을
캔버스 대신 빨래판으로 대체하고 있다.

예수님 손’이란 작품도 빨래판에 그렸다. 길게 뻗힌 손바닥에 박힌 못이 있고 선혈이 낭자하다.
팔목엔 철사 줄이 감겨 있다.
십자가에 못이 박힌 채 매달린 예수님의 손,
구원의 손이다.
하얀 바탕 색 속으로 인류를 향해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이목일은 그림 밑에 ‘내 손이 움직이질 않는데 못 박힌 손이야 얼마나 아팠을까?’라고 써놓았다.

이목일은 뇌경색으로 왼쪽 수족을 제대로 쓰지 못하여 재활에 집중하고 있지만,
붓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희망 하나만이 생존할 수 있는 의미였다.
이목일은 길 잃은 외기러기가 되어 야간 비행을 시작했다.
빨래판 굴곡이 음향의 물결처럼 그리움의 숨결처럼 펼쳐진 공간으로 날개를 펼치고 있다.
보름달이 떠 있고 은하수와 별이 있다.
지상엔 꽃들이 피어있다.
그는 절망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고 광명을 찾아 유토피아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이목일은 ‘나무와 해’라는 그의 홈페이지를 통해 소통이 이뤄진다.
이 사이트를 통해 근작(近作)도 올리고 근황을 지인들에게 알리며 소통하기에 그의 최신작을 감상할 수 있다.

이목일은 근래 작품들은 하늘, 산, 호수를 배경으로 기러기. 오리를 커다랗게 그려놓고 있다. 기러기와 오리는 한 번 날면 몇 날 몇 밤이 걸려 하늘을 횡단하여 목적지에 당도한다.
그곳은 새끼를 낳아 기르며 힘을 비축하여 비상을 준비하는 곳이다.
물은 생명의 어머니이며 하늘, 산, 호수는 자연을 상징한다.

이목일은 자연의 이치와 순환에서 오는 생명율(生命律)과 미학을 발견하여 깨달음의 꽃으로 피워놓고자 했다.
이번에 보여주는 작품들은 발병 이후 재활병원에서의 체험과 사색이 반영된 것으로 지난 삶과 생각의 궤적을 성찰하고 앞으로의 길을 모색한 작품들이다.
죽음의 고통에서 삶의 의지와 발견의 신록과 꽃을 피워냈다.
그냥 화사하고 향기로운 꽃이 아니다.
죽음의 진통에서 소생한 삶의 의미를 심신의 혼을 태워 밝힌 불빛이다.
생명에 대한 갈구와 찬가를 형상화 한 것이다.

이목일의 조형언어는 죽음의 고통을 뚫고 얻어진 생명의 불꽃이지만,
가열성을 속으로 품고
바깥은 온화하고 평화롭게 달관의 미소를 띠고 있다.
전신마비의 자녀를 지극정성으로 간병하는 어머니의 모습 등 재활병원에서의 체험에서 우러난 인생의 발견과 의미가 자연과 융합되어 거대한 생명의 물결로 출렁이게 하고, 비상의 날개를 달아준다.
생명력에서 용솟음치는 용기와 깨달음의 날개 짓이다.

이번 이목일의 작품에서 보인 성과는 개인의 독창력과 상상력에 의한 예술성에만 국한되지 않고, 자연과 인간, 신과 인간,
죽음과 생명에 대한 절절한 체험 공간을 거쳐 진정한 자아 발견과 세상을 밝히는 조형 미학을 피워낸 데 있다.
이목일의 작품에서 보이는 긍정적인 삶의 발견과 불굴의 생명력은 관람자들에게 용기, 정열, 사랑, 휴식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한다.

이목일 <나무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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