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남의 행진 

주목해본다. 의자에 몸을 앉히니 몸의 한 구석이 닿을 듯 말 듯 해온다. 어느 세대부터인가 급격히 짧아져 온, 유독 인간의 몸에서만 존재감을 상실해온 녀석의 마지막 입지가 엉덩이 끝에서 느껴져 온다. 이미 짧아질 대로 짧아져버린 꼬리뼈라는 녀석의 전생을 기억해내기가 쉽지 않다. 흡사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제이크 설리’의 형상과도, 주인의 옆을 총총히 걸으며 위로 말아 올린 강아지의 그것과도, 어스름한 퇴근 길 일찍이 어둠이 찾아와버린 재래시장의 축축한 길목에서 열심히 횟집을 탐독하는, 물음표와도 비슷한 고양이의 그 것(꼬리)이 떠올려질 뿐이다.

도저히 인간에게서는 퇴화해버리기 이전 진보했었던 긴 꼬리를 상상할 수가 없다. 그것은 마치 역사책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안중근의 수염이며, 선녀와 나무꾼의 선녀마냥 상상이자 사진으로밖에 접할 수 없는 아쉬운 진실이다.

사람들은 퇴화해버린 꼬리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붙어있으면 안될, 오히려 존재하기에 본인의 나약함을 상징하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을까? 아니면 있는 듯 없는 듯 얼굴의 솜털마냥 신경이 덜 쓰이는 부분이었을까? 문득 잃어버렸지만 아쉽지만은 않은 존재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3월의 해가 뜬지 보름하고도 십여 일이 더해진 날의 오후, 하워드센텀병원 접수데스크에서는 작은 잔치가 벌어졌다. 보호자분이 들고 오신 떡들로 이루어진 잔치의 소음이었다.

마치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다 돌아온 하이에나의 꼴을 한 나로서는 어느 누가, 어떻게 왜 등의 육하원칙은 버려둔 채 그 떡에 시선을 꽂아두었다. 희미해진 이성은 이내 들려온 보호자의 음성 덕에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우리 어머니 콧줄 떼신 기념떡 드셔요-’ 다시 돌아온 이성의 활약으로 떡보다도 ‘콧줄 뗐다’는 말에 주목할 수 있었다. 보호자의 얼굴을 보니 아, 그토록 감격스러웠던 가습기의 뿌연 김 속에서 발견했었던 그 분의 얼굴이 또 한 번 담겨있다.

일전에 첫 에세이를 쓰리라 다짐하게 만들어준 계기의 주인공이 한 번 더 나를 동하게 하려한다. 본원 홈페이지에 처음으로 에세이를 올리기 시작했던 첫 주인공의 반가운 소식이다. 에세이를 처음으로 내보인 날, 그 분에 대한 표현을 나또한 기억한다. ‘짧게 다듬어진 반삭의 머리…뒤척거릴 미동도 힘겨운…그마저도 일정치 않은 들숨과 날숨…(중략)’

제 기억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때의 그 상태에서 너무도 좋아진 환자의 모습이다. 이는 갓난아기가 걸음마를 뗀 순간과는 또 다른 발전의 맛이 있다. 우리 하워드센텀병원에 모인 분들은 모두가 한 번의 추락을 경험하신 분들이다. 그런 분들에게서 한 번의 발전은 어느 때보다도 더욱 간절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마치 간절하다는 말보다 더한 표현이 있다면 당장에 그 표현을 빌려 쓸 만큼 이루어 말할 수 없는 소망인 것이다.

코에 매달려있던-코 속 깊이를 알게 되었으리라 생각하게 되는 플라스틱 관이 바깥과 연결되었던 지난날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 분의 생명을 짊어졌던, 허나 그만큼의 괴로움을 보상으로 요구했던 많은 관들 중의 하나가 퇴화한 것이다. 이젠 피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플라스틱의 몸체가 떨어져나가고 그 자리엔 고요한 숨소리가 머무르게 될 것이다. 이는 곧 나약한 것들의 퇴화, 그로써 얻게 되는 진보가 있는 것이다.

상상할 수 있는가. 색색거리던 옅은 숨소리가 양식을 넘기는 목넘김의 소리로 바뀌고, 손가락의 힘겨운 추켜올림에서 일어나기 위해 침대의 바를 잡는 정도의-움직임으로 바뀐 것이다. 숨을 쉬기 위해 달싹거리던 입이 이젠 말을 하기 위한 도약의 입구가 되어버린 것에 놀라울 뿐이다.

이래저래 많은 생각이 든다. 풍족한 만감이 교차한다. 지금까지도 떠도는 만감 중에서 단연 기쁨과 놀라움이 돋보인다. 장담하는 바이다. 다음엔_ 어쩐 일인지 지금 기약하는 ‘다음’이 올 것만 같은 기대감에서 한 가지 말하고 싶다. 다음번엔 그 분이 무릎위엔 떡을 얹고 휠체어를 밀고 들어오며 ‘휠체어 운전하는 기념’떡을 건네주시는 그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지금 기약한 그 다음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금 진화한 다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또 한 번의 감동에 뒤이어 다시 한 번의 소망을 페이지에 남겨본다. ‘병원에서 일어나는 소음의 중심에는 갇힌 몸에서 깨어난 환자의 감탄스러운 음성만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말이다. 희망이 있기에 더 무한한 생명력을 가진 그 분의 행보를 지켜본다.

2012.04.03

그리고 그 후, 히 초 연